에너지

80세 행위예술가 모셔온 베네치아 최고 미술관… 산마르코 광장에선 韓 단색화 거장 이우환 전시

May 15, 2026 IDOPRESS

전세계 미술인들의 성지 베네치아가 들썩인다 : 11월 22일까지 비엔날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에너지의 전환' 전시 전경. 수정으로 가득한 설치물을 관객들이 직접 통과하며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리슨갤러리


남녀 한 쌍이 거대한 만리장성 성벽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서 만나 결혼식을 올리겠다던 약속은 중국 정부의 허가를 기다리다 흘러간 5년의 세월에 바래어 갔고,결국 축복이 아닌 이별의 의식이 됐다.


90일간의 처절한 행군 끝에 만난 이들은 짧은 포옹을 끝으로 영영 남이 됐다.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한때 그의 예술적 동반자였던 울라이가 남긴 역대급 걸작 '연인들: 만리장성 걷기(The Lovers: The Great Wall Walk)'의 이야기다. 전설이 된 이 이별 퍼포먼스가 지금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미술관인 아카데미아에서 상영 중이다.


◆ 아브라모비치,80세 회고전 '에너지의 전환'


아브라모비치의 80세 기념 대규모 회고전 '에너지의 전환(Transforming Energy)' 전시장 입구에 1988년 발표된 이 영상이 흐르고 있다. 아카데미아에서 여성 작가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미술관 270여 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천 개의 소 뼈다귀 더미다. 아브라모비치에게 1997년 여성 최초로 베네치아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건네준 기념비적인 '발칸 바로크'를 오마주한 것이다. 당시 아브라모비치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습한 지하실에서 1500개의 실제 소뼈를 쌓아두고 나흘 동안 매일 6시간씩 뼈다귀를 하나하나 물과 브러시로 닦아냈다. 악취가 진동하고 구더기가 끓었다. 충격을 받은 관객들은 전시실을 뛰쳐나갔다. 그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뼈의 핏자국을 통해 당시 유고슬라비아 내전(발칸전쟁)의 야만성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올해 제61회 베네치아비엔날레가 개막하면서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에서 100개가 넘는 전시가 개최되는 동시에 베네치아 31곳에서도 역대급 병행 전시가 열리고 있다. 베네치아는 1895년에 세계 처음으로 비엔날레를 열면서 전 세계 미술계의 성지로 떠올랐다.


아브라모비치 회고전은 전 세계가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날 더욱 무겁고 강렬한 울림을 준다.


전시를 관람하며 과거의 극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그의 퍼포먼스가 이제는 '치유의 여정'으로 변모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의 전환'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과거와 현재,물질과 비물질,육체와 정신의 만남을 통해 관객의 몸과 감각 속에 잠들어 있던 에너지를 깨운다. 더 나아가 예술가와 관객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특별한 전율을 선사한다.


실제 청바지에 의사 가운을 입은 전시장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수정(크리스털)이 박힌 명상대에 올라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길 수도,벽에 붙어 있는 수정석에 머리와 이마,배를 대고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도 있다. 돌침대에 원하는 만큼 누워볼 수도 있다. 천연 물질인 수정은 관객에게 지구 근원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는 치유의 재료다. 전시 마지막에는 나무막대 끝에 머리카락 뭉치가 달린 '에너지 브러시'를 들고 있는 퍼포머에게 다가가 그 옆 침대에 눕는다. 그 퍼포머는 몇 분 동안 관객의 몸을 구석구석 브러시로 쓸어주는 행위를 한다. 복잡한 생각들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맑아진 느낌이다.


이처럼 전시는 관객이 직접 경험하며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과거 작가가 자신의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다면,이제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보듬는 영성적 예술가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우환의 '더 키스'. 산마르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전시실과 연결된 2층 야외 테라스에 낭만적인 돌 두 개가 서로 기대 놓여 있다. 페이스갤러리

◆ 산마르코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우환 '더 키스'


치유와 명상의 기회는 시끌벅적한 베네치아의 심장부 산마르코 광장에서도 마주했다. 산마르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신생 미술 기관인 산마르코아트센터(SMAC) 2층에서 올해 구순을 맞이한 단색화 거장 이우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뉴욕 디아비컨에서 열리는 작가의 회고전과 시기를 같이한다. 작가의 소장품 단 20여 점으로 19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60년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다.


국내 관객이라면 호암미술관과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많이 접했던 익숙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공간이 달라지니 작품이 뿜어내는 '사유의 깊이'도 다르게 느껴진다.


1960년대 대규모 설치물에서 1980년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1986년 '바람으로부터',1992년 '조응',2011년 '대화'와 최근작 '응답'까지 간결하고 절제된 전시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1969년과 2019년에 발표됐던 '관계항'으로 모래밭에 수천 개의 철사를 수직으로 꽂아 만든 설치물이다. 마치 빽빽한 갈대밭을 연상시키며,자연스럽게 1500여 년 전 늪지대였던 베네치아의 근원을 떠올리게 한다. 훈족의 공격을 피해 늪지대로 피신했던 당시 로마 난민들은 갯벌에 수백만 대의 말뚝을 박아 도시를 건설했다. 베네치아의 자연은 이우환의 '모래'나 '돌'로,또 그들의 의지와 문명은 '철'이라는 소재에 녹아 있다.


전시실과 연결된 2층 야외 테라스에는 낭만적인 돌 두 개가 놓여 있다. 작품 제목은 '더 키스(The Kiss)'. 돌 두 개가 맞대어 서 있고 이들을 쇠사슬 두 줄이 원형을 그리며 감싸듯 바닥에 놓여 교집합 모양을 만들어낸다. 연인들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시에 쇠사슬이 주는 구속과 연대라는 역설적 의미까지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게 만든다.


이우환은 최근 회화에 다채로운 색채를 과감히 도입하기 시작했는데,작품 전체에 일렁이는 생명력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찬미를 노래하고 싶은 것은 노작가의 본능인가 싶다.


[베네치아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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