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유일한·박열 등
독립 위해 헌신한 삶 무대화
'헤이그' 등 3편 연달아 공연
항일서사,관객들에게 큰 공감
광복 80주년 등 기념일도 몰려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에서 열린 뮤지컬 '헤이그' 시연회 장면. 연합뉴스
1907년 헤이그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1923년 도쿄의 한 법정,1941년 태평양 건너 극비 특수 요원 훈련장.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현장들이 뮤지컬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다. 일본의 부당한 침략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로 향했던 특사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헤이그'와 '암호명 A'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주도한 비밀 독립작전에 참여했던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을 도모했던 박열의 삶을 그린 '박열' 등의 작품을 통해서다.
4월 1일 가장 먼저 막을 올린 뮤지컬 '헤이그'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파견된 이상설·이준·이위종의 여정에 이들을 돕는 또 다른 특사가 있었다는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공연은 세 특사가 열차를 타고 헤이그로 향하며 시작된다. 열차 안에는 특사단을 위협하는 일본군과 이들을 비밀리에 돕기 위해 동행한 또 다른 특사가 함께 타고 있다.
긴장감 가득한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과거와 현재,대한제국과 네덜란드를 넘나드는 역동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특히 영화 '부산행',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등의 VFX를 담당한 더만타스토리가 참여해 운행 중인 기차의 느낌을 실감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웅장한 선율과 절절한 가사로 구성된 '조선의 봄'과 같은 넘버들도 인상적이다.
참여 배우 중 이상설 역을 맡은 송일국의 이력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헤이그 특사단 수행에 파견됐다는 기록이 있는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이기도 하다. 후손이 그 역사를 무대에서 재연하는 셈이다.
송일국은 지난 8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기찻길 바로 옆에 할아버지 기념관이 있는데 헤이그라는 작품도 기찻길을 주 배경으로 한다"며 "기차와 저 사이 무언가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공연은 6월 21일까지.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2024년 초연 당시 공연 장면. 컴퍼니연작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에 참여한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8월 18일 시행을 목표로 했던 이 작전은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며 무산됐다. 이 극비 작전에서 선발된 요원 19명은 이름 대신 암호명 A·B·C로 불렸고,이 중 첫 번째 조장을 맡았던 암호명 A가 바로 유일한 박사였다. 작품은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냅코 프로젝트라는 독립운동 서사를 007과 같은 첩보 액션 장르와 스윙 재즈 넘버들을 통해 풀어낸다. 긴장감 넘치는 서사와 속도감 있는 넘버가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몰입감을 자랑한다는 평을 받는다.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추진된 이 작품은 100억원이 넘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가 투여됐다. 미국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가 음악을 맡았다. 재연이 공연되는 올해가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이다. 유준상·신성록·박은태 등 충무로급 배우들이 유일한 박사 역을 맡아 초연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고훈정·이창용·김건우·정상훈·하도권·김승용 등이 함께 출연한다. 7월 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6000여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맞선 박열과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그린다. 실존 인물의 사실을 기반으로 가상인물인 도쿄재판소 검사국장 류지의 서사를 더해 입체감을 높였으며,민족 서사보다 두 개인의 신념과 사랑을 정면에 내세운다는 점이 특징이다. 법정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박열의 저항 정신과 후미코와의 연대가 교차하며 펼쳐지는 서사가 관람 포인트다. 개막일인 6월 10일은 6·10 만세운동 100주년 당일이기도 하다. 9월 6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4관에서 공연된다.
세 작품이 한 시즌에 집중되는 배경에는 여러 흐름이 맞물려 있다. 스윙데이즈는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헤이그는 특사 파견 120주년,박열은 6·10 만세운동 100주년이라는 개별 타이밍과 맞닿아 있고,뮤지컬 '영웅'의 대극장 흥행이 항일 소재의 가능성을 먼저 열어젖힌 것도 이 흐름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뮤지컬 팬층을 넘어 중장년·가족 관객까지 공감할 수 있다는 점,희생과 동지애·비극적 결말이라는 서사 구조가 뮤지컬 장르 문법과 잘 맞는다는 점도 제작사 입장에서 이 소재를 선택하게 하는 유인이다.
[구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