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C 2026’서 본 엔비디아
칩을 넘어서 산업질서 재편
AI,먼저 쓰는 것만으론 부족
산업구조 재설계 못하면 필패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대회(GTC) 기조강연에서 차세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플랫폼 베라루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아래는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 아키텍처인 ‘루빈 울트라’. [AP 연합뉴스] 엔비디아라는 이름은 오래 전부터 익숙했다. 컴퓨터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회사를 모를 수 없다. 게임 화면이 끊기거나 버벅거리면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그래픽카드를 지포스로 바꿔.” 내게 엔비디아는 게임을 잘 돌아가게 해주는 그래픽카드,지포스를 만드는 회사였다.
젠슨 황이라는 이름도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신제품을 소개하는 최고경영자(CEO) 정도로 봤다. 그가 왜 전 세계 산업계에서 특별한 존재로 평가받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깐부 회동’을 했을 때도 비슷했다. 한국 기업들이 그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젠슨 황이 생색을 내고 더 큰 주목을 받는 걸까.
하지만 지난주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26’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엔비디아와 젠슨 황은 단순히 칩을 파는 기업과 경영자가 아니었다. 산업과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고 주도하는 존재였다.
그동안 내가 접한 인공지능(AI)은 질문에 답하고,문서를 요약하고,업무를 조금 더 편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나 GTC 2026이 보여준 AI는 그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일하는 에이전트가 되고 있었고,AI끼리 협업하는 체계로 진화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로봇의 두뇌가 되고,자율주행차의 판단 체계가 되며,공장과 물류의 흐름을 통제하는 피지컬 AI로 확장되고 있었다. AI가 더 이상 화면 속 서비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산업의 운영체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막대한 연산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있다. 엔비디아는 단순히 인프라를 공급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 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개발 생태계,산업 간 연결 구조까지 함께 만들고 있었다.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을 산다는 것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다. 그들이 사는 것은 연산 능력만이 아니라 엔비디아가 제시하는 미래의 질서와 방향이다. 왜 젠슨 황이 유독 돋보이는지,왜 세계 주요 기업 총수들이 그와의 만남을 중시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한국 기업들에 주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한국은 AI 시대의 주변부에 머물 나라가 아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있고,경쟁력 있는 자동차 회사가 있으며,촘촘한 통신 인프라와 강한 제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AI가 서비스 단계를 넘어 공장,물류,모빌리티,로봇,에너지 같은 현실 산업으로 들어갈수록 한국의 강점은 더 커질 수 있다. 한국은 피지컬 AI가 가장 빠르게 구현될 수 있는 산업적 토양을 가진 나라다.
물론 조건이 있다. 좋은 하드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와 데이터를 연결하고,데이터를 소프트웨어와 연결하며,다시 그것을 운영 시스템과 서비스로 묶어내는 역량이다.
반도체는 잘 만들지만 플랫폼은 남이 만들고,자동차는 잘 만들지만 차량 데이터의 주도권은 다른 기업이 가져가고,공장은 잘 돌아가지만 AI 운영체계는 외부 기술에 의존한다면 부가가치의 중심은 결국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이 진짜 고민해야 할 질문은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하나의 좋은 제품이 아니라 산업 전체를 어떻게 연결하고 통합하느냐에서 나온다. AI 시대의 승부는 기술을 누가 먼저 갖느냐가 아니라,변화를 누가 먼저 자기 산업의 질서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재만 디지털테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