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글래드스톤서 내달 16일까지
덜어내고 압축한 사물의 본질 다뤄

모린 갈라스의 ‘Beach Shack,Door’(2026) <글래드스톤> 1980년대 미국 미술계는 과잉의 시대였다. 안젤름 키퍼가 거대 캔버스에 격정적 서사를 쏟아내고,데이비드 살레가 복잡한 이미지를 겹겹이 쌓아 올릴 때 살레의 제자 모린 갈라스(64)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스승의 화려함을 뒤로한 채 한 뼘 크기의 작은 화면에 고향 뉴잉글랜드의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한 그만의 고집이었다.

모린 갈라스의 ‘Rocky Beach,Rainbow’(2025) <글래드스톤> 서울 강남구 글래드스톤 서울은 갈라스의 국내 첫 개인전인 ‘April 2026’을 연다. 미국 휘트니미술관,시카고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이 소장할 만큼 회화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가지만,한국 관람객에게는 이번이 첫 소개다.

모린 갈라스의 ‘Pink Roses,Dark’(2024) <글래드스톤> 작가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개발하는 데 헌신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뉴욕 미술계는 강렬한 에너지를 앞세운 신표현주의와 해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센 물결이 휩쓸고 있었다. 이 흐름과 반대로 작가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아름다운 정원과 꽃을 그리는 데 천착했다.

모린 갈라스의 ‘Pine Creek’(2026) <글래드스톤> 작품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크기다. 가로 기준 성인 손 한 뼘 정도인 작은 화면은 관람객을 작품 가까이 끌어들인다. 이는 영웅주의적인 대작들 사이에서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 보다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의도적인 장치다.

모린 갈라스의 ‘Surf Drive’(2025) <글래드스톤> 화면 속에는 뉴잉글랜드 해안가의 오두막,수풀 사이의 집,꽃들이 등장한다. 이는 단순히 눈앞의 풍경을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작가는 풍경을 찍은 사진을 활용해 대상을 수없이 분석하고 정제해 형태와 색채의 본질만을 남긴다.

모린 갈라스의 ‘Summer Porch’(2025) <글래드스톤> 이 정제 과정에서 작가의 작업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화면 중앙에 집이나 꽃을 배치하고 주변을 하늘이나 풀잎으로 둘러싸는 특유의 공식을 사용하면서도,집의 문과 창문을 지워버리거나 인물을 철저히 배제한다. 인물이 사라진 빈 풍경은 특정 장소의 기록을 넘어 관람자의 기억이 개입될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간으로 확장된다.

모린 갈라스의 ‘June’(2022) <글래드스톤> 작가는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층을 칠하는 방식을 통해 수정 없이 빠르게 작업을 완성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패널 위 유채 작업과 종이 위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작업을 함께 전시됐다. 유채 작업이 두터운 질감을 준다면,아크릴 작업은 보다 투명하고 평면적인 느낌을 통해 추상적인 형태와 색감의 대비를 강조한다.

모린 갈라스의 ‘November 12th’(2026) <글래드스톤> 여전히 거대한 담론과 자극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갈라스의 작은 그림은 보는 것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